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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프레 한 접시를 머리맡에 놓아둔 채 잠이 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윌은 자신의 딸을 그곳에 매장하고 싶지 않았었다. 시칠리아는 결코 우아한 도시가 아니었다. 그곳은 무차별적으로 지어진 문명의 원류 위에서, 고결함을 망각한 인간들이 죽고 죽이는 사투를 벌이던 장소다. 비록 한니발 렉터와 동화를 꾀하면서 그의, 살인에 대한 강박적인 결벽은 적어도 다소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그는 애비게일이 잠들 장소는 조금 더 조용한 도시를 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명은 신앙이라는 뜬구름 위에서 번영한단다. 천장을 향해 고개를 쳐든 채, 윌은 삼위일체의 메타포를 묘사한 거대한 템페라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세상을 떠난 그의 딸에게. 생전에는 돌아오지 않는, 영원한 번영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희생되었지.

 

나는 네가 살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너는 어떨까? 얻었을까, 아마 네가 얻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였을 안식을 말이야. 그런 바람에서 나는 당신을 용서한 거지. ─아니, 실은 용서하고 싶었던 거야. 그러지 않고선 그 아이의 삶이 너무 가엾으니까.

윌은 의자에 앉은 몸을 더더욱 옹송그렸다. 그는 이제 오열하기 시작했다. 눈물은 무겁고도 고통스럽게 그의 눈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내린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들은 이제껏 말로 하지 못한 것, 차마 말로는 할 수 없을만치 묵직한 증오였다. 그는 진정한 슬픔을 맛본 인간이라면 응당 '슬픔'이란 단어를 증오하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분노는 그의 사고를 온통 불살라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끔 만들지만 슬픔은…애도해야 할 것이 생기면, 찌끼처럼 생겨나는 기억들이 그의 영혼을 자글자글한 벌레들처럼 갉아먹기 시작하니까. 하나의 단어만으로는 차마 이 감정을 설명할 수가 없게 되니까. 그래서 당신을 만나야 한다. 만나서 당신에게도 '느끼게 해 주고 싶어'. 마침내 확보된 고독 속에서 울음을 삼키며 그는, 단 한 번도 오열한 적이 없었을 그 짐승을 떠올렸다. 붉은 빛이 번득이던 그의 서늘하고도 수려한 두 눈도…. 만나고 싶어. 만나야 해. 내가 얼마나 당신을 닮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윌은 품 속에 숨겨온 나이프를 움켜쥐었다. 나는 당신을 만나야 해. 그래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저와 같은 생명체를 죽이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제 형제를 죽이지 않고선 존재를 스스로 확립할 수 없었던 카인의 오래된 설화와도 같은 말이다.

*

그 꿈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윌은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잠시 그때에 머물러 있으며, 그 뒤는 전부 아직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자신의 상상이었다고. 그러나 그는 곧, 실은 방금까지의 자신이 꿈 속에서 이전의 상실을 되풀이했으며, 지금은 그로부터 몇 년이나 지난 뒤의 늦가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불을 들추고서 몸을 일으켰다. 새벽 두세 시쯤 되었을까? 그의 방엔 시계가 없었지만 코끝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이 대략적인 시간대를 말해 준다. 콴티코에 있었다면, 온갖 종류의 악몽을 꾸다 일어나 낚싯바늘을 꿰거나 다음 날의 강의 자료를 손 보았을 터였다. 그 때 그의 삶은 불완전한 고독과 그것이 가져다주는 지복으로만 채색되어 있었다. 무채색으로 칠해진 일상─아마도 당시의 그 사람은 그저 그 빛깔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람조차도 예측하지 못했던 미래에 와 있어. 그 생각에 이르른 뒤, 윌은 만족스러워서 혼자 조용히 웃음 지었다.

요사이의 그들은 생 로랑 뒤 바르의 자그마한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다. 작은 농지가 딸린 별장이었는데, 최근에 수확을 끝내는 바람에 그곳의 벌거벗겨진 땅은 지금도 바깥으로 훤하게 드러나 있을 터였다. 이곳이 원래 그의 소유였는지, 아니면 지금은 죽고 없는 사람의 것인지는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윌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그러한 종류의 의문엔 아무런 실효가 없으며, 어차피 그들은 언젠가 또다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아주 잘 인지하고 있었다. 현재를 만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그 사람이라면, 아마 길고 정연한 말로 그런 논지를 전개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나처럼 그 사람도 후회를 한다. 비에 적셔지듯 윌은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애석하게도 그 때문에 그 사람을 점점 더 사랑스럽게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안 자요?"

 

윌은 문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그 아이가 샐쭉 웃어 보였다. 아이는 소맷부리가 넓은 물방울 무늬 파자마를 입고 있었고, 잠에서 막 깬 듯 몰골이 부스스했다. 윌은 웃으며 그녀를 불렀다. "애비게일." 이름을 불린 소녀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서는 침대간으로 걸어왔다. 내가 공연히 널 깨웠을지도 몰라. 그런 자신의 근심을 불식시키려는 듯 경쾌하게. 윌은 애비게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서 뒤늦게 대답했다.

"오늘은 별이 아주 많이 보일 것 같아서."

 

소녀는 그 말 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아듣는다. 달도 없는 밤에 아이의 몸은 밝고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윌은 천천히 그녀에게서 손을 떼었다─나는 알 수 있어. 그럼에도 이것은 꿈이 아니다.

 

"너와 얼마나 같이 살고 싶었는지 모른단다…."

변명처럼 이어진 그 말에 애비게일은 착하게도, 전부 다 이해한다는 듯 웃기만 했을 뿐이었다. 윌의 심장이 온통 아려왔다. 그래. 이게 그가 바라던 애비게일 홉스의 모습이었다. 때로는 반항적이지만 총명하고 애살스러운 어린아이. 그리고 온갖 고락을 함께한 뒤 마침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고…믿었지. 내 아버지가 못했던 걸 내가 네게 해줄 수 있기를 바랐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녀가 살아남았더라도 자신이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게 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필요했으리라는 것을. 그 증거로 나는 당시에도……너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애비게일이 윌에게 어리둥절하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그 말은, 내가 죽을 만도 했다는 뜻인가요?"

윌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지 않아. 죽어 마땅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아무리 다른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해도 말이지." "윌 답지 않아요."

애비게일이 총명하게 두 눈을 반짝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내 생각을 들어 봐요─내가 아는 윌은 권총을 든 징벌자예요. 세상엔 죽어 마땅한 인간도 존재한다고 생각하죠. 윌은 내 친구들이 죽은 방식으로 우리 아빠를 처형했고, 한니발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그 사람이 만들어낸 또다른 구제불능의 괴물을 사냥했어요. 중세에 창으로 산적들을 궤뚫고 다니던 어리석은 기사들처럼요. 그 뒤엔 어땠죠? 두 사람의 목숨을 양손에 들고 저울질했잖아요. 붉은 용과 한니발 렉터. 그토록 증오하던 한니발의 그 사람의 방식을 그대로 흉내내면서까지 말이에요."

"그건 흉내가 아니었어. 징벌도 아니야. 완전무결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애비."

"그러면 왜 그랬어요?"

"궁금했으니까."

윌은 잠시 말을 끊고서, 침대 구석으로 올라가 커튼을 열어 젖혔다. 별이 아주 많은 밤이었다. 잔 구름 하나 없이 넓게 펼쳐진 밤하늘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커다란 별들이 억수처럼 온갖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호수와, 침엽수림과, 작물이 모두 베어진 채 거뭇하게 드러난 그들의 농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농지 한가운데엔…그 사람이 서 있다. 우습게도 평범한 농부 같은 소박한 행색을 하고서, 모깃불 같은 것을 피워 혹여 맨땅에 아직도 어정거릴지도 모르는 잡벌레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결코 지내기 수월했다고 할 수 없었던 시간 동안 그들은 몇 번이나 거주지를 옮겼고,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그러면서도 웃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고, 그러면서 윌은 점점 애비게일을…점차 자주 생각하지는 않게 되었던 것 같다. 그 뒤에 남겨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도. 그리고 윌이 그 모든 것을 떠올리는 동안 애비게일은 여전히 그의 등 뒤에 있었다. 윌은 알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으니까.

"죽어도 싼 사람은 세상에 없어. 그 사람과 함께하면서 그것을 알았지…. 하지만, 아름다워. 그렇잖아. 나 또한 그 자리에 있었어. 둘 이상의 삶과 삶이 생존을 위해 맞부딪치던 그 순간에. 그 어떤 살아있는 존재도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여서는 안 돼. 그래서 아름다운 거야. 나는─"

그는 애비게일이 반론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그리고 자신이 해왔던 말들이 모두 서로 모순되어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경청하고 있었다. 알 수 있어. 느낄 수 있으니까. 그것은 자신의 상상이 아니다. 애비게일은 정말로 상냥하고, 총명하고, 이해심이 많고 그 나이 소녀답게 애살스러웠다. 윌은 아주 힘겹게 다음 말을 내뱉었다. 내가 너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야. 내 선택이 틀렸어. 미안하다. 네가 살아난다면 나는 아마도 제일 먼저 네게 그 말을 해야 할 거야….

"나는……내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라. 지금은 모르겠어. 가끔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단다. 아직은 어떤 연유로건 허망하게는 죽고 싶지 않다고 말이야. 그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자격이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구나."

윌은 고개를 축 늘어뜨렸다. 이게 나의 한계구나. 그녀에게, 그녀를 만나면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말. 그런 말들이 너무 많아서 내 마음은 쓰레기가 잔뜩 부유하는 인공 수조처럼 지저분하다. 윌은 이제껏 마음 속으로 허망한 사과와 애원과 부질없는 성토를 몇 번이나, 몇 년이나 반복해왔다. 그러나 결국 그녀를 마주한 끝에 튀어나온 것은 지리멸렬한 고해성사에 지나지 않는다니. 이 어찌나 어리석고, 어찌나 부조리한지! 윌은 두려워하면서, 떨리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완전히 감쌌다.

애비게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윌은 고개를 수그린 채 아이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녀는 윌을 두고 떠나는 대신, 그런 그의 앞으로 다가와 조용히 한쪽 손을 들어올렸다. 어쩌려는 것일까? 어쩌면 나를 해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너는 나를 죽이러 온 사신이 아닐까? 윌은 웅크린 채로 눈을 감았다. 너라면 괜찮아. 너라면 나를 죽여도 좋단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그 다음 순간 애비게일은 차가운 오른손을 윌의 뒤통수에 올리고서 다만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윌은 여전히 바보 같네요."

그것으로 끝이었다. 사라졌다. 윌은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의 방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차가운 바람과, 바깥에서 점멸하는 거대한 은하수의 별빛을 제외한다면. 그는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소매로 닦아내고서, 천장까지 뻗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바람이 마구 그의 얼굴을 때렸다. 사냥법을 갓 배운 새끼처럼 이제야 겨우 냉혹함을 품기 시작한 늦가을의 산바람이다. 그 아래 존재하는 인간의 형상이라고는 오로지 그 자신과 다른 한 사람의 것 뿐이었다. 윌은 옷을 대강 꿰어입고서, 온통 헝클어진 침구를 버려둔 채 망설임 없이 자신의 방을 나섰다.

*

 

최후임을 예감하되 결코 그것을 확정하지는 말라.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윌은 한니발이 그렇기 때문에 작금을 더욱 황홀히 향유하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매 순간을 작품처럼 아름답게 살도록 해요. 작품보다도." 윌이 한니발 대신 그렇게 말을 하자, 한니발은 눈꼬리를 휘면서 웃어 보였다. 윌은 그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기쁨은 붉게 타는 그의 아름다운 동공 안에서도 가장 심층부에서도, 저의 허리와 팔뚝을 그러잡는 그의 손길에서도 온전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한니발은, 지금 이 세상에서 타인의 최후를 누구보다도 많이 지켜본 인간 중 하나일 터였다. 아니, 한때의 당신은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윌의 목을 끌어안은 채, 그의 체취를 음미하는 그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인간에 가까워져 있다. 나의 신이여. 당신은 그렇기에 아름답다. 최후를 의연하게 맞자고 제안할 필요도 없을 테지. 아무리 생의 마지막이라도 지나친 절박함은 절명의 순간에 추醜를 더할 뿐이니까. 윌은 한니발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속삭였다. 제우스는 레다와 에우로파를 갖기 위해 필멸의 육신, 신보다도 못한 것으로 취급되었던 존재들을 흉내냈다고.

 

"이만 이 생을 끝내도록 해요, 윌."

그가 속삭였다. "삶은 아름다워요. 나는 영원히 그 미美를 향유하고 싶답니다. 우리는 이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최초의 이름에서 다시 다른 이름의 삶으로 건너가는 거예요. 그것은 과거나 미래 같은 것이 아닙니다. 당신 또한 알고 있겠지요.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어요."

그래요. 윌이 나지막하게,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하도록 해요.

 

끝이 오고 있었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 용은 적어도 몇 시간 내로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윌은 곧게 선 한니발을 바라보았다. 달빛을 등진 채 표정 없이 선 그는 찰흙처럼 유연하게 깎인 대리석, 혹은 잘 도정된 사파이어 조각과도 같다. 아니, 아니지. 당신을 그런 하찮은 실물로 표현하는 행위가 가당키나 할까? 나는 다만 말을 잃고 눈을 감는다. 뻔히 예견된 운명을 전혀 다른 어휘로 입에 담는 과정에 빠져들기 위하여.

 

*

윌은 외투의 앞섶을 걸머쥔 채 한니발의 바로 뒤에 섰다. 그는 꼿꼿이 서 있었다. 선 채로, 저 구름 위에 살았다던 헤스티아처럼 거대한 화로 안에서 타오르는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있었다. 아마도 그는 평소처럼 슬며시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그는 옆에 낡은 양철 양동이 여러 개를 두고서, 불이 잠잠해지려 할 때마다 그 안에서 조금씩 연료가 될 만한 것들을 꺼내어 쓰고 있었다. 윌은 그의 뒤로 다가가 두 팔로 그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니발은 동요하지 않고서, 기다란 부지깽이를 틀어쥔 채 붉은 제라늄 한 줌을 꺼내어 타오르는 불 안으로 그것을 던져 넣었다.

"잠이 안 오나요?" 윌은 고개를 저었다. 한니발은 몸을 틀었다. 그의 손이 윌의 머리를 어루만지자, 몇 시간이나 된 온기가 윌의 몸 안으로 따뜻하게 번져나갔다….

 

fin.

Haunting_Dreams - Twin Mus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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